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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제도

위대한 비즈니스는 때때로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by 인사로그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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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영국의 록밴드 비틀즈(The Beatles)는 아주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때는 195776. 당시 15살이었던 폴 메카트니는 울튼 교구 교회에서 주최하는 정원 축제(Woolton Parish Church Garden Fete)에 참석했습니다. 그가 활발한 교구민이거나 독실한 기독교인이라서가 아니라, 축제에 가면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사춘기 소년의 기대감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곳에서 폴 메카트니는 마음에 드는 짝을 찾지 못했고, 꿩 대신 닭의 심정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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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날 울튼 교회 축제에는 당일이 되어서야 겨우 공연을 허가받은 고등학생들의 밴드가 있었습니다. 폴 메카트니는 쿼리맨(The Quarrymen)이라는 그 밴드의 공연을 보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했고, 밴드와 연이 있는 아이반 본(Ivan Vaughan)이라는 친구를 통해 리드 보컬이었던 존 레논(John Lennon)을 소개받았습니다. 폴 메카트니는 존 레논 앞에서 자신의 기타 연주를 들려주었고, 존 레논은 폴 메카트니를 바로 스카우트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비틀즈는 굉장히 우연한 만남(Chance Meeting)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메카트니가 평소에 활발하게 교구 활동을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축제에 갔던 것도 우연이었고, 당일이 되어서야 겨우 공연을 허가받은 존 레논도 그날 그곳에 있었을 확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계획에 없던 우연한 만남에서 위대한 것이 탄생하는 일은 실로 부지기수입니다. 비즈니스도 그렇습니다. 죽마고우와 사업을 하는 경우보다는 사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타인과 둘도 없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는 일이 더 흔하죠. 오늘은 우연한 만남에서 위대한 비즈니스가 꽃피웠던 몇 가지 사례를 다뤄봅니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Wired.com

구글 :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1995, 당시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2학년으로 재학 중이었던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대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은 예비 신입생들을 위한 캠퍼스 투어의 가이드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캠퍼스 투어에 참여한 예비 신입생 중에는 미시건 대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래리 페이지(Larry Page)도 있었죠. 대학교 정원이 워낙 크다 보니 여러 자원봉사자 중에서도 래리 페이지가 세르게이 브린이 담당한 그룹에 배정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은 투어를 하는 동안 끊임없이 충돌했다고 합니다. 특히 도시의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도시 계획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불쾌하다(obnoxious)’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그날의 불 튀기는 만남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의 씨앗도 자리를 잡아, 몇 달 후에 레리 페이지가 서치 엔진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시스템을 구축할 사람으로 찾아간 건 다름 아닌 세르게이 브린이었습니다.

 

 

헨리 포드와 토마스 에디슨 ⓒMedium.com

포드 : 헨리 포드와 토마스 에디슨

헨리 포드는 어렸을 적부터 토마스 에디슨을 동경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뿐인 영웅과도 같은 존재였죠. 성인이 되고 포드는 에디슨이 운영하는 자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189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에디슨 조명회사(Association of Edison Illuminating Companies)의 컨벤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도 그 행사에 참석을 하였고, 아주 우연히 헨리 포드와 단 둘이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상과도 같은 토마스 에디슨 앞에서 헨리 포드는 자신이 디자인한 최초의 자동차인 쿼드리사이클(quadricycle)을 조심스럽게 소개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은 토마스 에디슨은 그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계속 정진하라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You have the thing. Keep at it”). 몇 년 후, 헨리 포드는 에디슨의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하고 포드 모터 컴퍼니(Ford Motor Company)를 차렸습니다.

 

 

둘은 이후로 둘도 없는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어 1914년부터 1924년까지 다른 유명인사들과 함께 캠핑을 다니기도 했으며, 이웃 동네에 같이 별장을 짓기도 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사망하기 직전 그의 마지막 숨결을 담은 시험관을 에디슨의 아들이 헨리 포드에게 선물한 것만 봐도 둘이 얼마나 특별한 사이였는지 짐작이 가는데요.

 

만약 그의 우상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발명을 이어갈 수 있었을지,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우고 나와 창업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스스로 가질 수 있었을지, 당시 대통령을 포함한 유명인사들과 스스로 인맥을 쌓을 수 있었을지, 수백 수천번의 실패를 경험한 선구자의 조언 없이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 수 있었을지는 물론 모를 일이지만 1896년의 우연한 만남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포드 모터 회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cnbc.com

애플 :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스티브 워즈니악은 공통의 친구인 빌 페르난데스(Bill Fernandez)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1971년 어느 날 빌 페르난데스는 쿠퍼티노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친했던 스티브 잡스와 같이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책을 하던 중, 빌 페르난데스는 같은 동네에 살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세차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아주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빌은 잡스와 워즈니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둘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워즈니악은 졸업을 했고, 잡스는 재학 중이었습니다), 관심사가 비슷했습니다. 애플의 창업자답게 물론 컴퓨터 기술(Technology)에도 열정적이었지만, 재미난 사실은 둘 다 타고난 장난꾸러기여서 서로 홈스테드 고등학교(Homestead High School)에서 어떤 장난(prank)들을 쳤는지 자랑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이후 워즈니악이 애플 I을 만들었을 때 잡스가 마케팅을 담당했고, 곧이어 애플 II를 작업하며 둘은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애플을 창업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엔젤 투자자 마이크 마르쿨라(Mike Markkula) 외에, 첫 실질적인 직원으로서 둘을 소개해주었던 친구 빌 페르난데스를 애플의 4번째 직원으로 고용합니다.

 


 

혹자는 비즈니스에는 우연한 만남(Chance Meeting)이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연한 만남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만남이 중요하고 임하는 자세가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앞서 본 사례들처럼 예기치 못했던 짧은 대화에서 대단한 파트너십이 형성되거나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때가 많습니다. 의도적인 네트워킹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떠한 우연에서 위대함이 탄생할지 알 수 없는 만큼,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만남을 소중히 하는 자세가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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